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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엘그레코의 그림을 위한 여행과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by ktraveler 2022. 3. 4.

엘 그레코의 그림을 위한 여행과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 여행

회화의 새로운 방식, 매너리즘 

루브르 박물관을 여행한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은 엘 그레코입니다. 엘 그레코의 두 경배자가 추앙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굉장히 기괴한 그림입니다. 엘 그레코 이전의 르네상스 화가들은 정밀하게 묘사하고 원근법을 이용하였으며, 아름다운 신체 구조에 충실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세대로 세대가 추구한 그림의 형태는 사조를 제작하고자 했었으며, 그런 화가들이 이룩하고자 한 방식이 매너리즘입니다. 우리는 흔히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를 다른 새로운 방식을 찾지 않고 항상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것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하는데, 회화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지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해오던 것을 벗어나 새로운 그림을 창조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추구했던 것입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굉장히 길쭉한 형태로 그러져 있고, 화면은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합니다. 그림에 출현하는 모든 캐릭터가 손가락이 길고 발가락도 깁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의 특징

엘 그레코는 이 그림 외에도 많은 그림을 그려낸 화가입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을 여행하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미술관 여행을 가서 이런 독특한 느낌과 색상, 길게 그려진 형태를 발견하게 되면 그 그림은 100% 엘 그레코 그림일 것입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알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엘 그레코의 출신은 그리스 크레타 섬입니다. 엘 그레코는 이후 베니스로 넘어가 그림을 배웠으며 틴토레토, 티치아노 등과 함께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로마에서 10년 정도 그림을 그리다 35살이 되던 즈음 스페인의 톨레도로 옮깁니다. 사람들은 그를 엘 그레코라고 불렀는데, 엘 그레코라는 말의 뜻이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엘 그레코의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 토코 폴로스라는 이름인데, 본인이 아니라면 기억하기도 어렵고 발음도 어려웠기에 엘 그레코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엘 그레코 그림 여행의 종착지는 톨레도

엘 그레코의 방식으로 그린 그림 중 최고의 그림으로 뽑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톨레도로 여행을 떠나셔야 합니다. 톨레도에는 산토 토메라는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성당은 지금도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하나의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여행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산토 토메 성당 근처에 있는 엘 그레코의 집이라고 불리는 그림 전시장도 주요 여행 포인트로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일단 그림이 세 등분되어 있는데, 높이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오르가스 백작이 죽은 뒤 땅에 매장당한 장면이 아래쪽 반 정도 위치하고 중간에 예수, 성모 마리아 등이 있는 곳이 있으며 맨 위쪽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삼단 분류법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라파엘로가 사용했던 방식을 차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

루브르 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난 관광객이 명화의 방에서 꼭 봐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압도되는 엄청나게 큰 그림이 하나 있는데, 거의 실물과 같은 크기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입니다. 루이 다비드라는 사람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심했던 시절 문화계의 실세로 자리 잡은 인물입니다. 로베스피에르에게 협조했던 사람이 얼마 가지 않아 무너져 내렸고 나폴레옹 1세가 복귀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결국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성대하게 황제 대관식을 치르게 됩니다. 반대 진영에 위치한 루이 다비드는 분명 위기를 맞았어야 했지만 다시 나폴레옹의 수석 궁정 화가가 됩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살아남은 이유

이유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이라는 그림을 그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에 매우 감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그림을 받은 이후부터 루이 다비드에게 적극적으로 본인을 그려줄 것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라는 어마어마한 그림을 그려냅니다. 실제 1804년에 시행된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린 것이며, 완성이 된 시점은 1807년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10m x 6.3m의 크기로 그려졌습니다. 압도적인 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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