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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우리나라의 화강암 산지와 활용 및 그림에서 나타나는 선조들의 관광 풍습

by ktraveler 2022. 3. 24.

우리나라의 화강암 산지와 활용 및 그림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 선조들의 관광 풍습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화강암 산지와 활용

전통의식으로 활용

우리나라 선조들이 화강암 산지를 인식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강암 산지들은 우리 선조들에게 신선이 사는 땅이나 경배를 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전통의식으로 용왕신을 모시는 제단과 같은 것을 마련해두거나 검은색 비석을 세워두거나 행사를 여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되었습니다. 또한 후에는 화강암이 종교적인 활동과도 굉장히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됩니다.

 

 

화강암의 종교적인 활용 예시

불국사에 위치한 몇 개의 탑들 중 다보탑 같은 것들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화강암 벽에 부처님을 새겨 넣는 활동도 하였으며, 민간신앙적인 전통적 활동도 있었습니다. 고석정이라는 강원도에 위치한 화강암 바위는 일부는 잘라져 있고 일부는 평평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탄강에 있는 이 고석정은 임꺽정의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꺽정이 바위의 작은 홈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입니다.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화강암 바위에는 민간의 전통적인 인식 속에서 설화적인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 선조들의 관광 풍습

왕의 관광을 대신한 그림

그런데 반해 조금 더 공식적인 모양을 보여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시기가 조선 후기입니다. 사실 조상들은 여러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많은 화가들이 우리나라의 산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겸재 정선의 산수도와 같은 그림을 보면 산수를 보이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나타내고자 그림을 그립니다. 산수도를 보면 선비 한 명이 관을 쓰고 앉아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런 식의 의식, 선비들이 보여주었던 모습 등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명승이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참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림을 그립니다.

 

 

멋진 풍경을 관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례

또한 산수도에 밑에 부분에 나이 든 사람들과 그들을 쫓아다니는 동자를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멋진 풍경을 가진 곳들을 순례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그러다 보니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정조의 경우 본인이 직접 어떤 지역에 이동하는 것은 큰 문제이니 직접 갈 수 없어 화가를 보내 지역에 멋진 산지가 있다고 하니 그림을 그려서 보여달라는 요청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김홍도가 임금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비봉 폭이라는 그림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렇다고 폭포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앉아있고 폭포가 내려가고 조선의 선비들이 노는 모습, 4~5명이 패를 지어 산에서 유람을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옛 선비들의 관광

화강암의 특징 중 하나인 암 봉형으로 나타나는 지형이나 산꼬대기에 바위가 쌓여 있는 토루의 형태가 김홍도의 그림에서 잘 나타나게 됩니다. 금강산을 그린 그림을 보면 너럭바위가 있고, 폭포도 있고, 몇 개의 토루도 보이게 됩니다. 금강산 자체가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산이기 때문에 그림 속에 있는 바위들은 전부 토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천이 흐르며 계단 상의 폭포를 만들어 낸 모습, 바위가 깨져서 만들어진 판상, 화강암이 만들어진 판들도 보입니다. 또한 선비들이 함께 앉아서 관광을 하는 모습, 가마를 가져다 놓고 유람을 하는 모습 등 이런 자연환경이 형성한 관광지를 보고 즐기는 것을 조선시대 때부터 즐겨했던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광 가이드의 시초, 승려

가마라는 교통수단을 가지고 이동을 한 것, 가마꾼도 있으며, 승려의 모습도 보이는데,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승려가 하는 역할 중의 하나가 관광 안내사와 짐꾼이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금강산을 방문하고 관광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큰 호사였으며 평생의 꿈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조선 후기의 기록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구휼 활동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임금이 상을 주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금강산을 조선의 양반 중에도 권세가 높은 인물이 이런 곳을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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